역사/한국사능력검정시험

[한국사 능력검정 시험] 시험에 나오는 고구려 특징

pandada 2019. 5. 23. 10:0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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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구려 특징

초기 고구려 특징

  - 서옥제라는 일종의 데릴사위제 풍속이 있었다.

  - 10월 ‘동맹’이라는 제천행사 - 수도에 태학을 세워 유교경전과 역사서를 가르치고, 지방에는 경당을 세워 청소년에게 한학과 무술을 가르침.

 

 

삼국지 위지동이전의 고구려

  - 고구려는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고 평야가 없어서 사람들은 산과 계곡을 따라 살며 골짜기 물을 마셨다.

  - 좋은 밭이 없어 힘들여 일구어도 배를 채우기에는 부족하였다. 사람들의 성품은 흉악하고 급해서 노략질하기를 좋아했다.

 

 

고구려의 무덤

  - 초기에 주로 돌무지무덤을 만들었으나 점차 굴식돌방무덤으로 바뀜

  - 돌무지 무덤(벽화가 없다, 만주의 집안 일대에 많음, 서울에서도 발견됨)

  - 굴식돌방무덤(벽화를 그리기도 했으며 주로 만주의 집안, 평안도 용강 등지에 분포)

 

 

고구려의 고분벽화

  - 당시 고구려 사람들의 생활, 문화, 종교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

  - 무용총의 수렵도와 강서대묘의 사신도에서 패기와 진취성을 엿볼 수 있다.

  - 초기에는 주로 생활을 표현한 그림이 많았고, 후기로 갈수록 점차 추상화되어 사신도와 같은 상징적 그림으로 변함

 

 

유리왕 업적 (고구려 2대 왕)

  - 서기 3년 환도산성(길림성)으로 천도

  - 이후 국내성(길림성 집안)으로 천도

  - "황조가"의 내용이 나오는 지문이 나오면 유리왕의 내용으로 보면 된다.

  - 황조가

翩黃鳥    펄펄나는 저 꾀꼬리는 

 雌雄相依     암수가 서로 노니는데

     念我之獨       외로울 사 이내 몸은   

         誰其與歸 "    뉘와 함께 돌아갈 꼬       

 

 

 

고국천왕 업적 (179~197)

  - 흉년, 춘궁기에 국가가 농민에게 양곡을 대여해 주고 수확기에 갚게 한 구휼제도 시행(진대법 시행)

  - 부족적인 전통을 지녀 온 5부(소노, 계루, 절노, 관노, 순노)가 행정적 성격(방위명)의 5부로 개편

  - 왕위 계승도 형제 상속에서 부자 상속으로 바뀌었으며, 족장들이 귀족으로 편입 되는 등 왕권 강화와 중앙 집권화.

<광개토대왕 / 장수왕의 영토지도>

광개토 대왕(391~413)

  - 국강상광개토평안호태왕. 생존시의 칭호는 영락대왕

  - 영락이라는 연호 사용, 한국에서 사용된 최초의 연호

  - 400년에 신라 내물왕의 요청으로 왜구 격퇴. 이로인해 전기 가야 연맹이 약화

  - 410년에 동부여를 정벌하여 64성을 공파함으로써 동부여가 고구려의 판도 안에 들게됨

 

장수왕

  -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중원 고구려비 건립

  - 중원 고구려비

    ->신라를 동이로 칭하고 있다. 따라서 고구려는 자신을 천하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다.

    -> ‘신라토내당주’라는 구절에서 고구려의 군사지휘관이 신라 영토 내에 주둔하고 있었던 사실 표기

  -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

 

고구려 부흥운동

  - 고구려 멸망 668년 이후 보장왕의 서자 안승을 받든 검모잠과 고연무 등은 고구려의 유민을 모하 한성(황해도 재령)과 오골성을 근거지로 부흥 운동을 전개

  - 평양성을 탈환하기도 하고, 후에는 신라의 도움을 받았지만 실패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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