발해
발해 특징
- 수출품은 주로 담비 모피, 인삼 등 토산물과 불상, 자기 등 수공업품
- 수입품은 귀족의 수요품인 비단, 책
- 동경에서 시작되는 무역로를 통해 일본과 교역하였다.
- 상경을 출발하여 동경과 남경을 거쳐 동해안을 따라 신라에 이르던 교통로인 신라도를 통해 신라와 교역(문왕)
- 유학 교육을 목적으로 주자감을 설립하여 귀족 자제에게 유교 경전을 가르침.
- 고구려 문화를 바탕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여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다.
- 교육적으로는 유학을 장려하였지만 근본적으로는 불교를 장려 하였다.
발패 대표 유적지
- 발해석등 / 돌사자상 / 정혜공주 묘
- 발해석등
= 발해의 옛 도읍지였던 상경성 절터에서 발견된 유물
= 석등은 상경 용천부지의 제1 절터에서 발견되었다.
= 고구려 조각 양식의 특징이 있으므로 발해가 불교 조각에 있어서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자료.
- 돌사자상
= 정혜공주 묘 앞에 있는 석상
= 발해 돌사자상은 대체로 당의 돌사자상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어, 당 문화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추측됨.
= 조각의 표현에 있어서 당당하면서 힘찬 느낌을 주는 것은 고구려 조각 양식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.
= 당과 고구려의 석조 문화가 융합된 결정체
- 정혜공주묘
= 발해 3대 왕인 문왕의 둘째딸인 정혜공주의 묘
= 문왕의 존호 발견
= 천장이 모줄임 구조로 되어 있는데, 이러한 방법은 고구려 무덤에서 천장을 만드는 방법과 비슷하다.
무왕(재위 719 ~ 737)
- 영토 확장에 힘을 기울여 동북방의 여러 세력을 복속하고 북만주 일대를 장악
- 발해의 세력 확대에 따라 신라는 북방 경계를 강화. 흑수부 말갈도 당과 연결하고자함.
- 장문휴의 수군으로 당의 산둥 지방을 공격(732). 요서 지역에서는 당군과 격돌
- 돌궐, 일본 등과 연결하면서 당과 신라를 견제하여 동북 아시아에서 세력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.
- 독자적 연호 인안 사용.
- 발해의 2대 왕
문왕(재위 737 ~ 793)
- 중경 현덕부(길림성 화룡) -> 상경 용천부(흑룡강성 연안) -> 동경 용원부(길림성 훈춘)으로 천도
- 서신에서는 대흠무라고 일컬어진다.
- 신라도를 개설하여 신라와 대립관계를 해소.
- 당과 친선 관계를 맺으면서 당의 문물을 받아들여 체제를 정비
- 요하까지 영토를 넓히고, 남으로는 신라와 북으로는 흑수말갈까지 영토 확장
- 대흥, 보력 등의 독자적 연호를 사용
발해가 우리 역사인 이유
- 고구려 영토에 고구려 유민이 세운 국가이다.( 대조영 국가 세움 )
- 지배층은 고구려 민족이고, 피지배층은 말갈 민족 이었다.
'역사 > 한국사능력검정시험' 카테고리의 다른 글
[한국사 능력검정 시험] 공민왕의 개혁 정치 (0) | 2019.05.30 |
---|---|
[한국사 능력검정 시험] 고려의 중앙 정치 조직 (0) | 2019.05.29 |
[한국사 능력검정 시험] 고려의 특징과 고려 왕들의 업적 (0) | 2019.05.27 |
[한국사 능력검정 시험] 신라의 골품제도 (0) | 2019.05.26 |
[한국사 능력검정 시험] 시험에 나오는 신라 특징과 신라 왕들 (0) | 2019.05.25 |