역사/한국사능력검정시험

[한국사 능력검정 시험] 발해의 특징과 발해 왕들

pandada 2019. 5. 28. 09:40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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발해

발해 특징

  - 수출품은 주로 담비 모피, 인삼 등 토산물과 불상, 자기 등 수공업품

  - 수입품은 귀족의 수요품인 비단, 책

  - 동경에서 시작되는 무역로를 통해 일본과 교역하였다.

  - 상경을 출발하여 동경과 남경을 거쳐 동해안을 따라 신라에 이르던 교통로인 신라도를 통해 신라와 교역(문왕)

  - 유학 교육을 목적으로 주자감을 설립하여 귀족 자제에게 유교 경전을 가르침.

  - 고구려 문화를 바탕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여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다.

  - 교육적으로는 유학을 장려하였지만 근본적으로는 불교를 장려 하였다.

 

 

발패 대표 유적지

  - 발해석등 / 돌사자상 / 정혜공주 묘

 

발해석등 / 돌사자상 / 정혜공주묘

  - 발해석등

    = 발해의 옛 도읍지였던 상경성 절터에서 발견된 유물

    = 석등은 상경 용천부지의 제1 절터에서 발견되었다.

    = 고구려 조각 양식의 특징이 있으므로 발해가 불교 조각에 있어서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자료.

  - 돌사자상

    = 정혜공주 묘 앞에 있는 석상

    = 발해 돌사자상은 대체로 당의 돌사자상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어, 당 문화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추측됨.

    = 조각의 표현에 있어서 당당하면서 힘찬 느낌을 주는 것은 고구려 조각 양식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.

    = 당과 고구려의 석조 문화가 융합된 결정체

  - 정혜공주묘

    = 발해 3대 왕인 문왕의 둘째딸인 정혜공주의 묘

    = 문왕의 존호 발견

    = 천장이 모줄임 구조로 되어 있는데, 이러한 방법은 고구려 무덤에서 천장을 만드는 방법과 비슷하다.

 

 

무왕(재위 719 ~ 737)

  - 영토 확장에 힘을 기울여 동북방의 여러 세력을 복속하고 북만주 일대를 장악

  - 발해의 세력 확대에 따라 신라는 북방 경계를 강화. 흑수부 말갈도 당과 연결하고자함.

  - 장문휴의 수군으로 당의 산둥 지방을 공격(732). 요서 지역에서는 당군과 격돌

  - 돌궐, 일본 등과 연결하면서 당과 신라를 견제하여 동북 아시아에서 세력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.

  - 독자적 연호 인안 사용.

  - 발해의 2대 왕

 

 

문왕(재위 737 ~ 793)

  - 중경 현덕부(길림성 화룡) -> 상경 용천부(흑룡강성 연안) -> 동경 용원부(길림성 훈춘)으로 천도

  - 서신에서는 대흠무라고 일컬어진다.

  - 신라도를 개설하여 신라와 대립관계를 해소.

  - 당과 친선 관계를 맺으면서 당의 문물을 받아들여 체제를 정비

  - 요하까지 영토를 넓히고, 남으로는 신라와 북으로는 흑수말갈까지 영토 확장

  - 대흥, 보력 등의 독자적 연호를 사용

 

발해가 우리 역사인 이유

  - 고구려 영토에 고구려 유민이 세운 국가이다.( 대조영 국가 세움 )

  - 지배층은 고구려 민족이고, 피지배층은 말갈 민족 이었다.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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