공민왕 때의 개혁 정치

공민왕(재위 1351 ~ 1374)의 개혁 정치
① 방향 : 14세기 중반의 원·명교체기를 이용하여 대외적으로 반원 자주를, 대내적으로 왕권의 강화를 추구
② 반원 자주 정책
- 기철 등 친원파 숙청
- 고려의 내정을 간섭하던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
- 쌍성 총관부 회복(1356) : 무력으로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수복하고 동녕부를 정벌(색칠된 부분) / 의주, 초산, 강계, 갑주, 길주 지역 회복
- 요동 공략, 요양을 점령하고 우리 영토임을 선포(이성계)
- 2성 6부의 관제 복구
- 몽고풍의 폐지(채두변발금지), 원의 연호 폐지(친명외교정책 추진, 명의 연호 사용, 사신파견)
③ 대내적 계혁
- 권문세족들의 경제 기반을 약화, 국가 재정수입의 기반 확대를 위해 추진
- 왕권을 제약하고 신진 사대부들의 등장을 억제하고 있던 무신정권의 인사행정의 정방을 폐지(문무관 인사를 이부와 병부로 복귀)
- 전민변정도감의 운영
= 신돈을 등용하여 권문세족들이 부당하게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본래의 소유주에게 돌려주거나 양민으로 해방(권문세족의 약화와 국가재정수입 확대를 추구)
= 고려사 내용
"신돈이 전민변정도감 두기를 청하여 …… 전국에 방을 붙여 알리기를 "(백성이) 대대로 지어 내려온 땅을 힘 있는 집이 빼앗고, 또는 이미 땅 주인에게 주라고 판결을 내린 것도 그대로 가지며, 또는 백성을 노예로 삼았다. 이제 전민변정도감을 두어 이를 바로잡으려 한다. "
- 성균관을 통하여 유학 교육을 강화, 과거 제도 정비(신진사대부 등 개혁세력 양성)
④ 군제 개편
- 중앙에 충융위 설치 / 8위제 복설 / 방리군, 한산군 신설
- 지방에 5도 중심인 진수군 설치와 지휘관인 도수문사 신설
- 양계(북계, 동계 / 국경 인접 지역)에 만호부, 익군 설치
- 왜구를 막기 위한 특수군인 연호군 설치와 수군 강화
⑤ 개혁의 중단
- 권문세족들의 강력한 반발로 신돈이 제거되고 공민왕까지 시해되면서 중단
- 홍건적·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국력 소모
- 아직 개혁 추진 세력(신진사대부)이 결집되지 못한 상태에서 권문세족의 강력한 반발로 실패
- 노국대장공주를 잃은 후 1372년 자제위(子弟衛)를 설치하여 젊고 외모가 잘생긴 청년을 뽑아 좌주에서 시중을 들게 하였다.
- 제주도에서 목호의 난 발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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