역사/한국사능력검정시험

[한국사 능력검정 시험] 조선 왕조 및 특징

pandada 2019. 6. 1. 23:2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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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선

특징

  - 8도 밑에 인구와 크기에 따라 부, 목, 군, 현을 두고 속현과 향, 부곡, 소를 모두 없애고 일반 군현에 일원화시키고, 모든 군현에 지방관을 파견

  - 기존의 향리 세력은 수령 밑의 아전으로 격하되었으며 토지 지급이 없었음.

 

 

태종( 재위 1400 ~ 1418년 )

  -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제작(필사본이 일본에 현존)

  - 사병 혁파(1400)

  - 보충군 설치(신량역천의 간척이나 한품 자손 따위로 편성한 군대. 일정 기간 노역을 마치면 양인이 되도록 함)

 

 

세종( 재위 1418 ~ 1450년 )

  - 토지 비옥도와 풍흉의 정도에 따라 전분 6 등법, 연분 9 등법으로 바꾸고. 조세 액수를 1 결당 최고 20두에서 최하 4두.

  - 토지와 세제의 개혁 : 공법상정소와 전제상정소를 설치하여 전세 인하와 공평 과세 추구

  - 사창제 실시 : 빈민구제를 위해

  - 노비 지위 개선 : 재인, 화척 등을 신백정이라 하여 양민화, 여자종의 출산 휴가 연장 조치

  - 사법제도의 개선

    (1) 금부삼복법 : 사형수에 대한 3차례 재판

    (2) 태형 및 노비의 사형 금지

    (3) 감옥 시설의 개선

  - 칠정산 제작 : 중국의 수시력과 아라비아의 회회력을 참고하여 만든 역법서(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서울을 기준으로 천체 운동을 정확하게 계산)

  - 교단을 정리하면서 선종과 교종 두 종파에 모두 36개 절 만 인정하였다.

  - 신찬팔도지리지 창간

 

 

세조( 재위 1455 ~ 1468년 )

  - 원각사지 10층 석탑을 건립

  - 간경도감을 설치하여 불교 경전(월인석보)을 한글로 번역하여 간행하고 보급하는 등 적극적 불교 진흥책 펼침

  - 진관체제를 정비(1457)

 

 

성종( 재위 1469 ~ 1494년 )

  - 문물제도의 완성, 사림 등용 시작(김종직 등)

  - 관수관급제 실시(1470)

  - 홍문관 기능 강화(옛 집현전의 기능 부여) 서거정 등 <동국여지승람> 편찬(1481)

  - 서거정 등 <동국통감> 완성(1485), 국조오례의 편찬

  - 경국대전 완성(1485), 동국여지승람 편찬(군현의 연혁, 지세, 인물, 풍속, 산물, 교통 등이 수록)

  - 도첩제 폐지(1492)

  - 금양잡록(1492, 강희맹)

  - 음악의 원리와 역사 등이 정리되어 있는 악전인 악학궤범 제작(1493)

 

 

명종( 재위 1545 ~ 1567년 )

  - 문정 왕후의 지원 아래 일시적인 불교 회복 정책이 펼쳐진 결과, 보우가 중용되어 승과가 부활하기도 하였음.

  - 명종 10년 1555년에 판옥선 개발

 

 

광해군( 재위 1608 ~ 1623년 )

  - 선혜청을 설치하고 경기도에 시험적으로 대동법 실시하여 민간의 세금 구조를 일원화(1608)

  -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외교 정책을 펼침

  - 전란 수습을 위해 각종 서적들을 수습하고 새로 찍어내는데 노력을 함

  - 1611년 농지를 조사, 측량하여 양전을 실시

  - 왕실의 위엄을 높이기 위해 용비어천가 편찬

  - 1608년 창덕궁 준공, 1649년 경덕궁, 1621년 안경궁 중건

  - 선조와의 극심한 갈등.

 

 

효종(재위 1649 ~ 1659년 )

  - 국방을 강화하고 청에 대한 북벌 준비

  - 병자호란으로 인해 청에 볼모로 갔다 온 이후에 인조 이후의 왕을 이어받음.

  - 새로운 신식 총 개발

  -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한 북벌을 시작도 하지 못함

 

 

숙종( 재위 1674 ~ 1720년 )

  - 오가 직통제 : 다섯 집을 하나로 묶고, 통주를 두어 통 내를 관장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: 신분질서 확립, 재정을 위해 이동과 유망을 막기 위해

  - 금위영을 설치하여 5 군영 체제를 완비(1682)

  - 왕이 환국을 주도. 서인에서 갈라져 나온 노론과 소론이 치열하게 경쟁

  - 백두산정계비를 세워 청과 국경문제 협약

 

 

영조( 재위 1724 ~ 1776년 )

  - 균역법 시행(1750)

    = 조선 후기 군역을 대신하는 군포를 2 필에서 1 필로 줄인 것. 호당 군포를 부과한 것이 아니라, 토지 1 결당 군포 부과

  - 초기에는 노론과 소론을 번갈아 등용하여 오히려 정국을 어지럽게 함.

  - 따라서 소론과 남인의 일부 강경파는 영조의 정통을 부정하고 노론 정권에 반대하여 이인좌의 난을 일으킴

  - 그 후에 탕평책을 중심으로 정국을 운영, 서원을 대폭 정리

  - 이조 전랑의 권한을 약화시키기 위해 후임자 천거 및 3사의 관리 선발을 할 수 있는 관행을 철폐

  - 왕권 강화

  - 온건 계열을 중심으로 탕평책 실시

  - 가혹한 형벌을 폐지하고 사형수에 대한 삼심제를 엄격하게 시행

  - 속대전 편찬

  - 한국의 문물제도를 분류·정리한 백과전서인 동국문헌비고 편찬(1770)

 

 

정조( 재위 1776 ~ 1800년 )

  - 적극적 탕평책 실시(준론 탕평책)

    = 각 붕당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를 명백히 가리는 적극적인 탕평책 추진

    = 능력 중시(남인계 시파 중용, 서얼허통절목)

    = 급진 계열을 중심으로 한 준론 탕평 실시

  - 왕권 강화책

    = 장용영(친위부대) 설치

    = 규장각 설치 : 학술기구 -> 정치기구화(1776)

    = 초계문신제 : 신진관료를 직접 재교육

    = 수원(화성) 육성 : 화성 행차 -> 여론 수렴

    = 수령의 권한 강화 : 향약 주관

  - 신해통공(1791)

    =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 폐지 -> 사상의 발달

  - 대전통편(법전), 동문휘고(외교), 탁지지(호조), 추관지(법령), 규장전운(한자운서), 무예도보통지 편찬

 

순조( 재위 1800 ~ 1834년 )

  - 공노비 해방(1801)

  -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11살에 즉위하는 바람에, 정순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함.

  - 1811년에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고, 1832년에 영국 상선 암허스트호가 최초로 조선에 와 통상을 요구

  - 기존에 순종이었으나 철종 때 묘호가 순조로 개정

 

 

철종( 재위 1849 ~ 1864년 )

  - 삼정의 문란을 바로잡기 위해 삼정이정청 설치(1862)

  - 후사가 없던 헌종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왕위 즉위

 

 

조선의 시대별 건축 양식

  - 초기

    = 도성을 건설하고, 경복궁을 지었으며, 곧이어 창덕궁과 창경궁을 세움

    = 숭례문은 고려의 건축 기법과는 다른 방식을 채택하여 발전된 조선 전기의 건축을 대표

    = 개성의 남대문과 평양의 보통문은 고려 시대 건축의 단정하고 우아한 모습을 지니면서 조선 시대 건축으로 발전해 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.

 

- 후기

    = 불교가 신앙의 자리를 어느 정도 차지하고 정치·경제적 변화가 나타나면서 건축에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남

    = 사원이 세워졌고, 정치적 필요에 의해 대규모 건축들이 세워짐

    = 17세기의 건축으로는 금산사 미륵전, 화엄사 각황전, 법주사 팔상전(불교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양반 지주층의 경제적 성장을 반영)

    = 이것들은 모두 규모가 큰 다층 건물로 내부는 하나로 통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음.

    = 18세기에는 사회적으로 크게 부상한 부농과 상인의 지원을 받아 사원이 많이 세워짐. 논산 쌍계사, 부안 개암사, 안성 석남사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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