조선의 학파
동인
- 동인은 정여립 모반 사건(1589)등을 계기로 이황 학파의 남인과, 서경덕 학파와 조식 학파의 북인으로 분화되었다.
- 이황과 조식, 서경덕의 학문을 계승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수의 신진세력이 참여함
서인
- 이이와 성혼의 문인이 가담함으로써 붕당의 모습 갖춤.
성리학의 발달
- 이황
= 인간의 심성을 중시. 근복적, 이상주의적인 성격, 주리 철학 확립
= '기'보다는 '이'를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(‘이를 강조’)
= 주자서절요, 성학십도, 전습록변 등을 저술
= 성학십도(군왕의 도에 관한 학문의 요체를 도식으로 설명, 군주 스스로가 성학을 따를 것을 제시)
= 김성일, 유성룡 등의 제자에 의하여 영남학파 형성
= 16세기 정통 사림의 사상적 연원으로 위정척사론에 영향, 일본 성리학 발전에도 영향
- 이이
= 개혁적, 현실적 성격('기'의 역할을 강조), 일원론적 이기이원론
= 동호문답, 성학집요, 경연일기, 망언봉사, 격몽요결 등을 저술
= 성학집요(현명한 신하가 성학을 군주에게 가르쳐 그 기질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)
= 변법경장론 : 경세가로서 현실 문제 개혁에 과감한 주장
= 조헌, 김장생 등으로 이어져 기호학파를 형성
= 북학파 실학사상과 개화사상, 동학사상에 영향을 줌
= 통치 체제의 정비와 수취 제도의 개혁(수미법 : 공물을 쌀로 수취) 등 다양한 개혁 방안 제시
북인
- 임진왜란 중에 의병을 일으켜 구국에 앞장섰던 일을 바탕으로 전란 후 정국을 주도하여 광해군이 즉위함에 따라 이이첨을 중심으로 정국을 주도
- 임진왜란의 피해를 극복하는데 많은 성과를 올렸다.
- 광해군의 중립외교 지지(명과 후금 사이에서)(실리 중시)
남인
- 이황의 학통을 이었으며 성리 철학의 본원적 연구와 주리론을 고수하는 영남 남인과, 독자적 경전 해석(윤휴), 중농 실학 연구쪽으로 나아가는 경기 남인(성호 학파)로 나눌 수 있다.
- 현종때에 예송 논쟁으로 치열하게 서인과 다투었고, 숙종 때 경신환국 이후 정계에서 멀어지다 정조 사후 중앙 정계에서 완전 축출되었다.
노론
- 서인 중 남인에 대한 강경노선자(송시열)들이고 이이의 학설을 절대시하고 조선 사회가 안고 있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명분론을 강화하고 성리학을 절대화하였다.
- 일부 학자들이 중농적 실학 사상을 발달 시켰다.
소론
- 서인 중 온건노선자(윤증)들이고 절충적인 성격을 지닌 성혼의 사상을 계승하고 양명학과 노장 사상 등을 수용하는 등 성리학 이해에 탄력성을 보였다.
중농학파
- 반계 유형원
= 중국의 정전법(토지를 모두 농민에게 나누어줌)을 모델로 하여 관리, 선비, 농민 등 신분에 따라 차등있게 토지를 재분배하고 조세와 병역도 조장하자고 주장
= 균전론을 내세워 자영농 육성을 위한 토지 제도의 개혁을 주장
- 이익
= 유형원의 실학 사상을 계승, 발전. 성호학파 형성
= 자영농 육성을 위한 토지제도 개혁론으로 한전론을 주장
= 한전론 : 한 가장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규모의 토지를 영업전으로 정한 다음, 영업전은 법으로 매매금지.
중상학파
- 박제가
= 청에 다녀온 후 북학의를 저술하여 청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제창
= 상공업의 발달, 청과의 통상 강화, 수레와 선박의 이용 등을 역설
= 생산과 소비와의 관계를 우물물에 비유하면서 생산을 자극하기 위해 절약보다는 소비를 권장해야 한다고 주장
- 홍대용
= 지구의 자전설을 설파하고, 균전제·부병제를 토대로 하는 경제정책의 개혁, 과거제도를 폐지하여 공거제에 의한 인재 등용, 신분 차별의 철폐와 모든 아동에게 교육시켜야한다는 교육기회의 균등부여, 양반도 생산활동에 종사해야한다고 주장
- 유수원
= 사농공상의 직업 평등과 전문화 주장
중농, 중상학파의 한계
- 중농적 실학사상은 주로 정권에서 소회된 남인층의 주장이라 반영이 안됨.
- 중상적 실학사상은 영,정조 당시 신봉 채택되었지만 순조 이후 세도정치가 시작되며 반영되지 못함.
온건 개화파
- 기존의 정부와의 협력 속에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. 위로부터의 개혁을 실시 하려함.
- 박규수, 오경석, 유횽기 중심
급진 개화파
- 조선 후기 급진적 정치 개혁을 이루려 했던 정치 세력으로 갑신정변을 일으킴
- 김옥균, 박영효, 서광범 등의 급진 개화파는 서양의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근대적인 사상·제도까지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
붕당 정치의 변질
(1) 대립의 격화
① 일단 전세화의 추세
- 숙종 때에 이르러 붕당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고 환국이 나타나기 시작
- 이로써 특정 붕당이 정권을 독점하는 일당전제화의 추세가 대두
② 노론과 소론의 대립
- 분열 :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
- 성격 : 노론은 송시열을 중심으로 하여 대의명분과 민생안정을 강조하는 반면, 소론은 윤증을 중심으로하여 실리를 중시하고 적극적 북방 개척을 주장
③ 환국의 발발
- 환국을 왕이 직접 주도함에 따라 외척의 비중 강화
- 전랑의 정치적 비중 약화
- 비변사의 강화
(2) 경제적·사회적 환경의 변화
①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에 따라 17세기 후반 이후 상업적 이익을 독점하려는 경향 증가
② 정치적 쟁점도 사상적 문제에서 군사력과 경제력 확보에 필수적인 군영장악으로 이동
③ 지주제와 신분제 동요에 따라 붕당 기반이 붕괴
(3) 붕당의 변질
① 기해 예송(제 1차 복제 문제, 1659) : 효종의 사망 시 자의대비의 복제문제로 대립, 서인의 주장 수용(서인 집권 지속)
② 갑인 예송(제 2차 복제 문제, 1674) : 효종 비의 사망 시 복제문제로 대립, 남인의 주장 수용(남인이 집권하고 서인이 공존하여 자율적·공생적 붕당정치 유지)
③ 경신환국(경신대출척, 1680)
- 서인 집권 : 서인이 허적(남인)의 서자 허견 등이 역모를 꾀했다 고발하여 남인을 대거 숙청
- 결과 : 서인은 남인의 처벌을 놓고 온건론인 소론(윤증),강경론인 노론(송시열)으로 분열
: 붕당정치 원리가 무너지고 상대 세력을 인정하지 않는 일당전제화 추세가 등장
④ 기사 환국(1689)
- 숙종은 남인의 주장을 수용하여 희빈 장씨의 아들(연령군,경조)의 세자 책봉에 반대하는 서인(송시열 등)을 유배
- 사사 하고 , 인현왕후를 폐비시킴(남인 재집권)
⑤ 갑술환국(갑술옥사, 1694)
- 폐비 민씨 복위운동을 저지하려던 남인이 실권하고 서인이 집권
- 남인은 재기불능이 되고 서인(노론과 소론) 간에 대립하는 일당독재 정국이 전개
⑥ 신임옥사 : 노론 축출, 소론 일당정국
- 신축환국(1721) : 경종 때 소론이 세자책봉문제로 노론 축출
- 인임옥사(신임사화, 1722) : 경종 때 경종 시해와 세자 연잉군(영조) 옹립 음모로 노론 축출
(4) 붕당정치의 변질 결과
① 벌열 가문의 정권 독점 : 공론이 아닌 개인이나 가문의 이익을 우선하는 경향
② 양반층의 자기 도태
③ 서원의 남설 고유의 여론 형성 기능의 퇴색
④ 환국을 왕이 직접 나서서 주도함에 따라 왕실외척이나 종실 등 왕과 직결된 집단의 비중이 커졌다.
⑤ 3사와 이조 전랑은 정치적 비중이 줄어들었다.
⑥ 정치 권력이 고위 관원에게 집중되면서 그들의 합좌 기구인 비변사의 기능이 강화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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